찌라사건

사건 발생 10여 년… 그들은 어떻게 살인범을 잡았나

작성자
전전긍긍
작성일
2018-09-01 05:29
조회
1180


대한민국에서 1년간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대략 900건. 대부분 사건들은 증거와 주변의 진술로 수일 내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몇년이 지나도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미제사건들도 다수 존재한다.





2016년 살인사건 공소시효 제도가 폐지되면서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던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다. 발달된 과학수사도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과 주변의 의지가 진실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오랜 기간 풀리지 않고 미스터리로 남을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어떤 계기로 밝혀졌는지 사례 별로 모았다.




18년 간 범인 사진 품고 다닌 막내 형사 '노원 주부 성폭행 살인 사건'




사건 경위  : 1998년 대낮인 오후 1시에 집에 혼자 있던 주부 A(당시 34세)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A씨 남편의 체크카드로 151만원을 뽑은 뒤 자취를 감췄다. 당시 도봉경찰서가 발칵 뒤집혀 형사·강력팀 전체가 투입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단서는 현장에 남은 범인의 DNA와 혈액형, 현금입출금기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인의 흑백사진이 전부. 당시 막내로 투입된 김응희 경위도 선배 형사들 심부름하며 수사를 거들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5개월 뒤 인근 경찰서로 발령 나 사건에서 손을 뗐고, 수사본부도 2년여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해체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김응희(맨 왼쪽) 경위가 동료 경찰관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 부녀자 성폭행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18년 만에 검거한 김 경위는 “후배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고운호 기자



어떻게 잡았나 : 본부 해체 후 16년이 지나고 김응희 경위는 2016년 초 살인·강도 등 강력 사건을 전담하는 광역수사대 광역1팀에 배치돼 이 사건에 매달렸다. 김 경위는 18년간 지갑에 꽂고 다닌 용의자의 CCTV 사진부터 꺼내 들었다. 범인이 당시 20대였다고 판단하고 1965년부터 1975년 사이 출생자 중 강력범죄 전과자를 동료와 함께 전수조사해 8000여 명을 뽑았다. 이어 사진과 혈액형 등을 대조해 용의자 125명의 우선순위 10명을 정했다. 범인 오씨는 세 번째였다. 초동수사 당시 오씨는 성폭행 전과가 없어 용의선상에서 제외됐었다.

문제는 다음 단계였다. DNA를 대조해야 하는데, 구체적 혐의도 없이 DNA 채취를 요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경위는 오씨가 사는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에서 오씨가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검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말 국과수에서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김 경위는 "드디어 잡았다"며 함성을 질렀다. 김 경위는 오씨를 구속시킨 후에야 지갑에 꽂고 다니던 용의자의 낡은 흑백사진을 버렸다. ▶기사 더보기



11년간 묻힌 살인사건, 유골 없이 범인 잡다 강천실업 사장 살인 사건




사건경위 : 2000년 11월 강천실업에 다니는 직원 양씨 등 4명은 사장 강 모씨로부터 빌린 1억1000만원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살인을 공모했다. 양씨 등은 "돈을 갚겠다"며 강 사장을 사무실로 유인해 미리 준비한 쇠파이프로 폭행한 뒤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했다. 양씨 등은 강 사장 시신을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강원도 영월의 한 야산으로 옮겨 암매장했다.

당시 강 사장 유족의 실종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강원지방경찰청은 사무실 현금이 없어진 정황 등을 근거로 살인 사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양씨 등도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수사는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 살인 사건의 주요 단서인 시신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경찰 수사가 사실상 종결되자 주범 양씨와 다른 공범 1명은 중국으로 출국했다. 2년에 걸친 수사는 시신과 범인을 모두 찾지 못하고 2002년 수사반이 해체 되면서 종결됐다. ▶기사 더보기


2000년 11월 강원 평창의 비닐 제조업체 강천실업 직원 양모(59)씨 등 4명이 사장 강모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영월에 암매장한 사건.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유명한 이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졌다. 사법 사상 최장 시간 재판으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었다. /이철원 기자



어떻게 잡았나 : 2011년 초 강 사장의 형과 친분이 있던 한 형사가 광진경찰서 강력5팀에 합류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국으로 출국한 양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행방을 추적하니 그는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원에 입원 중이었다.

경찰이 찾아간 양씨는 위암 4기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양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직도 눈만 감으면 (살해한) 사장님 얼굴이 떠오른다. 너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양씨 자백을 토대로 나머지 공범 서씨와 김씨을 검거했고 주범 양씨는 자백 8일 만에 사망했다.

검거된 서씨와 김씨는 "양씨가 사장을 죽인 건 맞지만 우리는 시체만 옮겼을 뿐 죽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주범 양씨가 숨지고 공범들은 입을 다물어 버린 상황에서 사건은 또다시 미궁 속으로 빠질 위기였다. 그러나 이 사건 범인들이 구속됐다는 보도를 본 또 다른 공범 1명이 자수했다. 또 다른 김 모 씨는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저도 공모해서 사장님을 죽였습니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새롭게 나타난 공범 김씨에 함께 폭행으로 강 모씨를 죽였다는 정황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두 번이나 미궁에 빠진 사건, 경찰이 던진 한 수 '의성 뺑소니 청부살인 사건'


사건 경위 : 2003년 2월 23일 일요일 오전 8시쯤 경북 의성군 다인면 마을 진입로 한가운데서 김모(당시 54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전형적인 뺑소니 사고로 봤다. 시신이 발견된 도로는 오르막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내리막으로 이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뺑소니 범인을 잡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한적한 시골길이라 CCTV나 목격자가 없었고 현장에선 차량 파편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2013년 이 사건은 뺑소니 사망 사고 공소시효인 10년이 지나 종결되고 말았다.

/김성규 기자



어떻게 잡았나 : 2015년 11월 금융감독원에 "13년 전 의성 교통사고는 아내의 가족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한 짓"이라는 제보가 접수됐다. 공범 중 한 사람이 술자리에서 한 말을 어렴풋이 기억한 누군가가 보험 사기라고 제보한 것이다. 이렇다 할 만한 물증은 없었지만 금감원은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북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 최명호 경위는 13년 전 의성 미제 뺑소니 사건 발견했고, 검찰에서 폐기 직전인 사건 기록을 겨우 얻어냈다.

수사팀은 재수사를 시작하면서 '뺑소니로 위장한 살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보험금을 노렸다고 의심하기에는 불충분한 점이 많았다. 피해자 김씨의 아내 박씨가 김씨 앞으로 보험 두 개를 가입한 것은 사망 사고 3년 전이었다. 불입액도 많지 않았다. 보험금 수령자인 박씨는 사건 당시 친척 모임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 내부에서 "여러 정황상 제보가 잘못된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마지막으로 박씨 여동생에게 '한 수'를 던져보기로 했다. 그녀를 경찰서로 불러 이 사건에 대해 물으면 그녀가 경찰서를 나가 분명히 공범에게 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조사를 받은 여동생은 경찰서를 나서자마자 헤어진 내연남 최씨에게 연락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여동생과 계좌 거래 내역이 있던 최씨가 공범일 수 있다고 추리했다. 경찰은 최씨가 직접 트럭을 운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최씨를 조사했고 궁지에 몰린 그는 경찰에서 "김씨를 죽인 트럭은 동창인 이씨가 운전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이 생각지도 못했던 살인범 이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기사 더보기




12년간 다른 사람으로 살아온 살인범 안양 호프집 살인 사건

사건 경위 : 1997년 경기 안양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 최모(당시 42세)씨가 한밤중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 몸에선 흉기에 찔린 상처 11군데가 발견됐다. 그중 두 군데는 복부였지만 깊은 상처 9곳은 모두 목 근처에 나 있었다.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은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보아 치정에 의한 범행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이 호프집에 자주 오가며 최씨와 가깝게 지냈던 중국인 강모(당시 28세)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건 현장에 있던 맥주병과 유리잔과 탁자에서 강씨의 지문이 발견됐고, 강씨의 등산 스틱도 있었기 때문이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강씨를 잡으려고 다음 날 안양 호계동 강씨 집을 급습했다. 하지만 강씨는 이미 중국으로 달아난 상태였다. 이후 강씨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고 19년간 잡히지 않았다.


/이철원 기자



어떻게 잡았나 : 불법체류자였던 강씨는 스스로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하면 별다른 처벌 없이 과태료만 내고 출국할 수 있는 출국명령 제도를 이용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 다롄(大連)항으로 달아났다. 강씨는 중국에서 돈벌이가 되지 않자 2004년 브로커를 통해 가짜 신분증을 사고 이름을 이○○ 바꿔 다시 한국으로 밀입국했다. 그리고 2011년 실시한 '재외동포 고충해소'를 통해 합법체류자 자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어엿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사 대표가 됐고,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이○○이 예전에 사람을 죽이고 중국으로 도망쳤었다"는 내용의 첩보가 경찰에 입수됐다. 강씨가 술을 마시면서 털어놓은 과거 이야기를 누군가 듣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을 붙잡은 경찰이 지문을 채취해 보니, 1997년 호프집 살인사건 용의자 강씨가 자진 출국할 때 찍었던 지문과 일치했다. 경찰이 "당신 강○○ 아니냐" 묻자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던 강씨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범행을 자백했다. ▶기사 더보기






달라진 용의자 진술에 주목하다 '용인 교수 부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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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위 : 2001년 6월 28일 새벽 4시쯤 경기 용인시의 고급 전원주택 단지에 있는 한 의대 교수의 집에 괴한 2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2층 안방에서 자다 깬 부부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났다. 교수(당시 55세)는 허벅지를 찔려 중상을 입었고, 그의 아내(당시 54세)는 과다 출혈로 숨졌다.

당시 경찰은 사라진 금품 등이 없었기 때문에 원한이 얽힌 범행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청부살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경찰은 피해자의 주변 인물, 같은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던 전과자, 사건 현장 주변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한 사람 등 5000명을 대상으로 수사했다. 하지만 범인을 찾을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고, 이 사건은 2007년 2월 미제(未濟)로 넘어갔다.

▲사진 :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15년 전 경기 용인의 한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대학교수 부인 살인사건의 진범 김모 씨를 검거했다. 현장검증 과정에서 김씨가 도주경로를 따라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떻게 잡혔나 : 경찰은 2015년 8월부터 살인죄는 공소시효를 없애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되자 미제 사건 전담팀을 구성했다. 15년 전 경장 계급으로 '용인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용인동부경찰서의 박장호 경위가 팀장으로 재수사를 이끌었다.

박 경위 팀은 당시 수집한 자료 등을 다시 분석해 전과 기록이 있으면서 사건 현장 주변에서 휴대폰 통화를 했던 김모(52)씨와 또다른 김모(67)씨를 다시 주목했다. 이들은 사건 당시 "휴대전화 판매 때문에 전화를 했을 뿐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해 혐의를 벗었다. 박 경위 팀은 재수사 과정에서 두 사람이 1999년 1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같은 교도소에서 복역했고, 소속 작업반 역시 같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망을 좁혀나갔다. 그런데 60대 김씨는 경찰서에 나갈 예정이었던 지난달 5일 새벽 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기사 더보기



법의학자, 자신의 아들 정액으로 살인 혐의 밝히다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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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위 :  2001년 2월 4일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 유역에서 17살 여고생 박모양이 피살당했다. 발견 당시 박 양은 성폭행 당한 채 알몸으로 강에 빠져 숨져 있었다. 사인은 익사였다. 박 양의 주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도 확보했고 주검에서 범인의 DNA까지 확보했으나,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가, 2012년에 DNA와 일치하는 인물을 추적, 마침내 용의자를 찾았다.

그러나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씨는 성폭행 혐의는 인정했지만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김씨는 이미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김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이 되는 듯했다. ▶기사 더보기


40년 가까이 법의학을 해온 이정빈 단국대 석좌교수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시신을 살핀다. 그는 16년 동안 미궁 속에 빠져있던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용의자의 범행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김지호 기자



어떻게 잡았나 : 결국 용의자가 성폭행 직후 박 양을 살해했는지가 밝혀내려면 성관계 후 얼마 만에 사망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피해자가 성관계 후 바로 죽었다면 김씨가 피의자인 게 확실해지는 상황이었다. 광주지검은 국내 1세대 법의학자 이정빈 씨에게 이 부분을 의뢰했다. 이 교수는 사건 당시 수사관이 채취한 거즈에서 정액, 혈액이 듬성듬성 섞이지 않은 채 있는 정액을 발견했다.

생리 중이었던 피해자가 성관계 후 움직였다면 정액과 혈액이 뒤섞여 있었을 거란 가설을 세웠다. 위생팩에 아들의 정액을 넣고 주사기로 자신의 혈액을 살살 밀어 넣었더니 6시간 30분 동안 놔둬도 섞이지 않았다. 그런데 걷는 상황을 가정해 좌우로 움직이니 완전히 섞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박양 몸에서 채취된 것은 정액과 혈액이 분리돼 있었으니 성관계 당시 기절했거나 저항을 거의 못한 상태라고 보고 성폭행 후 바로 죽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사 더보기






대구 여대생 고속도로 사망 사건

사건 경위 :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한 여대생이 23t 화물차량에 치여 숨졌다.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신의 위아래 속옷이 없었다. 전날 밤 10시 40분쯤 대학축제 주막촌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캠퍼스를 떠난 후 연락이 끊긴 계명대 간호학과 1학년 정은희(당시 18세)양이었다.

속옷이 없다는 점, 시신 훼손이 심했다는 점 등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지만 당시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 사건을 종결했다. 유족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정은희양 사건'으로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내 영구 미제사건으로 분류돼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죽을 때까지 딸 억울함 밝힐 것"… 15년 전인 1998년 대구의 고속도로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정은희양의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를 아버지 정현조(67)씨가 살펴보고 있다. 당시 경찰은 정양의 죽음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지만, 아버지 정씨는 생업을 전폐하고 사건을 파고들어 재수사를 이끌어내고, 딸이 사망 전 스리랑카인 3명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밝혀낼 수 있게 했다. /남강호 기자



지금까지 이 사건은… 딸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생계 수단이었던 채소 장사는 진작에 접었다. 목격자를 찾기 위해 뿌린 전단만 수만장이 넘었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전신주에 걸었던 플래카드만 수백장이다. 정씨는 2013년 5월 검찰에 또 고소장을 냈다.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 이형택)는 2010년 DNA법(강력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보관하도록 하는 법률)이 제정된 것에 가능성을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과 경찰의 DNA 자료를 뒤져 15년 전 정양 속옷에서 채취한 DNA가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권유하다가 붙잡힌 스리랑카인 A(46)의 DNA와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검찰은 3개월여 동안 수사를 벌여, 15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A씨 등 스리랑카인 3명이 술에 취한 정양을 고속도로 부근으로 끌고 가 집단 성폭행한 사실을 밝혀냈다. ▶기사 더보기

그러나...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2015년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성폭행 혐의는 정양 속옷에 묻은 DNA가 K씨 것과 일치해 입증이 충분했지만, 특수 강간죄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1998년 발생한 이 사건의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K씨와 범인들이 정양의 책과 학생증 등 소지품을 빼앗았다"는 다른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을 확보해 K씨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2013년 기소했다. ▶기사 더보기

하지만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 증인으로 나온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소지품 탈취)을 믿을 수 없고, 혐의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2016년 1·2심에서 무죄가 나온 스리랑카인 K(50)씨를 스리랑카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6일 밝혔다. 공소시효 문제로 한국에서 처벌이 어렵다면 공소시효가 한국보다 긴 스리랑카에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특수강간죄 공소시효는 20년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양에게 가한 범죄 행위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한국 땅에서는 처벌이 어렵게 됐다. ▶기사 더보기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

사건 경위 : 2004년 12월 12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 태봉산에서 뼈가 드러나 있는 시체 한 구가 발견됐다. 시체는 들쥐들에게 갉아먹히고 있었는데 이틀 뒤 국과수의 부검결과 49일 전에 실종된 인근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노 양의 시신으로 밝혀졌다. 시신을 찾기 전 주변 지역에서는 노 양의 휴대폰, 속옷, 청바지 등 유류품들이 하나씩 발견됐는데 청바지에는 정액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묻어 있었다. 경찰은 '인권침해' 논란에도 주변인물과 화성 일대 4600여명의 택시기사, 전과자들의 DNA 샘플을 검출하여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으나, 어느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사건 당일 노 양을 태운 버스기사와 함께 내렸던 여대생에게 최면수사를 실시했으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사건은... 12년이 지난 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건의 유일한 단서였던 노양의 청바지에 묻어있던 정액이 2005년 8월 이 DNA는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던 국과수 요원의 땀 등에 의해 훼손됐기 때문이다. 공소시효는 폐지됐지만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과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없어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포함 2000년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 275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15년간 발생한 전체 살인사건의 3.5%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나 '개구리 소년 사건'처럼 영원히 미제로 남은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포기하지 않는 한 범인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초동 수사에서 놓쳤던 증거와 인물이, 또는 누군가가 흘린 말 한마디가 십수년이 지난 사건을 밝힌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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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2018.12.29 추천 0 조회 1840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15년 2개월간 옥살이한 목사가 있다. 그나마 다행히 재심을 거쳐 죄가 없음을 인정받았다. 범죄자 꼬리표를 떼고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했지만,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1972년 춘천, 성폭행을 당한 10살 여아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희생자는 현직 파출소장 딸이었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공권력에 대항하는 범죄로 규정했다. 체포 기한을 정해 놓고, 범인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잡지 못하면 수사기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압박했다. 범인은 체포 명령 기한을 하루 앞두고 체포됐다.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원섭 목사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 이틀간 고문과 폭행이 이어졌다.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하지도 않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법정에서 자백은 거짓이었다고 뒤늦게 강변했지만, 그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1972년 정 목사는 강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87년 12월 성탄 특사로 가석방됐다. 정원섭 목사(82)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 소재로 사용됐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정 목사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정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도 올해 6월 출간됐다.  정 목사는 누명을 벗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2011년 대법원은 그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를 토대로 정 목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3년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정 목사에게 26억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형사보상 소멸시효가 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인데, 정 목사가 10일 늦게 신청했다는 이유다. 판결에 굴하지 않았다. 정 목사는 사건 당시 자신을 고문한 경찰들, 기소 검사, 1심 재판장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올해 1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임태혁 재판장)는, 고문에 관여하고 증거를 조작한 경찰관 3명과 그들 유족에게 23억 8,800만 원을 연대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검사와 재판장, 국가에 대한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단 돈 만 원만 줘도 진심으로 사죄하면 용서" <뉴스앤조이>는 심경을 묻기 위해 정원섭 목사에게 26일 연락을 취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란 기대와 달리 정 목사는 불만을 쏟아 냈다. 항소할 생각도 없고, 배상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가 뭘까. 정 목사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 본다. "이번 판결은 '빈껍데기'라고 생각한다. 내 요구는 (경찰의) 고문 사실을 알고, 사건 조작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소한 검사, 또 그 사실을 전부 알고 현장검증까지 하고, 무죄 사실을 알면서도, 무기징역을 선고한 판사에게 책임을 물어 달라는 거다. 현재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경찰관들 자손과 가족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왜 그런 사람들한테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는가. 내가 그런 걸 요구하면 미친 놈이지. 판결문을 보면 가족 누구누구한테 얼마씩 배상하라고 나와 있다. 개똥 같은 판결이다. 왜 내가 불쌍한 이웃에게 폐를 끼치겠는가? 절대 그건 안 된다. 이 재판은 '제로'다." 한마디로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는 이야기다. 정 목사의 의지는 확고한 듯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항소할 계획이 없고, 경찰관들 유족들에게 돈 한 푼 받을 생각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 목사는 거액의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고 했다. "오히려 빌딩을 몇 채씩 가지고 있는 정 아무개 검사는 왜 (배상에서) 빠지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팔십 넘은 내가 돈 달라고 이렇게 소송하는 건 아니다. 만일 그들이 돈 만 원만 준다 해도,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고맙게 받아들일 거다. 소송은 전부 없던 걸로 할 거다."
이런18 2018.12.28 추천 0 조회 536
전북 군산시 옥고면 개야도 부근 바다에서 얼굴없는 시신으로 발견된 정호철씨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이 글에 대해서 분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그럴만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을 눈치 채셔야할텐데 그러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이 새벽에 한 번 글을 써 보겠습니다. (망자에 대해서 묵념...) 순서 없이. 잘 못 알고 있을 수 있는 부분을 짚어 보겠습니다. 1, (유가족이 주장하는) 노예생활을 그는 했는가? 답: 그는 주민등록을 위 주민등록표와 같이, 주소를 정상적으로 옮겨놓은 생활의 근거지였음으로, 노예로 끌려간 것이 아님. 노예를 부리면서 주민등록을 주인과 함께 주소지를 옮기는 경우도 있음? 2. 사건발생과 시신발견 시간의 차이는? 사건발생은  2012년 7월 24일......18시 50분경. 시신발견은     같은달   29일......12시 20분경. 그러므로, 약 5일간 바닷물 속에 시신이 잠겨 있었음. 그 5일동안 어떤 일이 바닷속에서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음. (바닷물에 빠져서 숨지면, 약 3일~7일 사이에 떠 오른다고 함) 이 날짜를 따져보아야하는 이유는... 시신이 바닷물 속에 잠긴 후, 어떤 일이 발생해서 시신이 훼손되었는지 확증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임. 머리부분 훼손이, 대형 물고기에 의한 것인지, 떠 오르다가 스크루에 의한 것인지, 사고 당시에 충격 때문인지 알 수가 없게 됨. 즉, 견인로프에 의한 잘림현상이라는 단 한가지 추론만으로 "불가"한 내용이라고 싸잡아 헐뜯을 수 없음. 오직 그 한가지 경우의 수만으로 몰고 가는 글의 추론이 그래서 나쁨. 3, 잘려나간 부분은 칼로 잘라낸 흔적인가? 아래는 경찰측 설명. 첫번째 의사는...
가벼운마음 2018.12.28 추천 0 조회 656
찌라시 한국사의 심화편으로 찌라시 중국사를 준비해 봤어. 중국과 우리는 고대로부터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의 역사는 뗄래야 뗄 수가 없어. 중국사를 알게 되면 한국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재미가 배가 될 테니 일단 따라와 보라고.   중국의 역사 중 요순시대는 일반적으로 전설적 국가로 치부를 하고 있고, 그 뒤 하상주 시대가 이어져. 첫 시간으로 기원전 1000년경 상(은)나라를 비빔면도 아닌데 맛나게 말아먹은 미녀 이야기로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려 해.   요순시대와 하상주 시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 이전의 이야기야. 춘추는 중국 사상의 최고봉 공자님께서 쓰신 책이야. 책 이름으로 시대 구분을 할 정도이니, 중국에서 이 분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아도 다들 알겠지? 영화 <봉신연의>의 '달기(판빙빙)'   오늘의 주인공은 음란 미녀 달기야. 그녀가 상(은)나라의 주왕을 꼬드겨서 준비한 대형 이벤트가 많이 있는데,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오금이 저릴 정도야. 1990년대 초반에 투명 비닐 옷을 입고 나타나 한국 주류 사회를 놀라게 한 박진영은 그녀의 창의력에 비하면 유치원생 수준이지. 창의력도 뛰어나지만 미녀인 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어.   대표적인 것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주지육림! 연못에 술을 가득 채우고, 고기로 조경을 해서 숲을 이룬다는 말이야. 요즘도 지구라는 행성에는 굶어 죽는 아이들이 넘쳐나는 판이야. 저 시대에 고기로 인테리어를 하고 연못에 술을 가득 채우다니! 흔히 지나치게 사치스런 파티를 일컬어 주지육림이라고 해. 여기에 여러분이 더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니, 중국사 어렵다고 미리 겁먹지...
라면먹자 2018.10.03 추천 0 조회 1220
  중국 배우 판빙빙(36)을 둘러싼 망명설, 감금설, 실종설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아나운서 장웨이제 실종 사건도 덩달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7일 대만 현지 매체들은 “판빙빙이 현재 감금된 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판빙빙은 참혹한 상태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중국 고위급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판빙빙은 6월 중국 국영방송 CCTV 앵커 출신 추이융위안의 폭로로 가택연금 된 상태로 탈세 혐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3개월 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lorealparis 이 사건은 90년대 중국 다롄 방송국의 유명 여성 아나운서 장웨이제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장웨이제는 임신 8개월 중이던 지난 1998년 돌연 사라졌으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조차 그녀의 종적을 알지 못해 사람들의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더했다. 행방에 대한 무성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렇게 사건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2년 ‘인체의 신비전’을 관람한 한 중국인이 “임산부 표본이 장웨이제와 닮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임산부 표본은 ‘인체의 신비전’의 여러 표본 중에서도 큰 논란이 됐던 표본이다. 논란의 쟁점은 이렇다. 임신 중 사망한 딸 혹은 아내를 어느 유족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데 동의했겠느냐는 것이다. 인체의 신비전을 표본을 만드는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는 “유족에게서 기증받았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표본이 실종된 장웨이제와 닮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언론사들은 해당 인체 표본의 이목구비 비율과 발사이즈 등을 측정해 장웨이제와 비교했고, 매우...
ㅎㄷㄷ 2018.09.11 추천 0 조회 1206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55)씨가 도피 7년만에 중국 현지 공안에 검거돼 '조희팔 사건'이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 있다. '조희팔 사건'은 조(58)씨 일당이 전국에 10여개의 유사수신 업체를 차리고 고수익을 낸다며 5년간 4만~5만명의 투자자를 모아 3억5000억원~4조원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 사건. 경북 영천 출신으로 알려져있는 조씨는 형제, 친구들을 핵심 임원으로 삼아 2004년 대구시 동구에 골반교정기와 찜질기 등 장비를 찜질방과 PC방에 빌려주는 업체를 차렸다. 조씨는 회장 행세를 하면서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낸 수익을 배당한다고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는 한 계좌에 440만원을 투자하면 매일 3만5000원씩 이자를 지급해 8개월만에 580여만원을 챙길 수 있다고 선전했다. 원금과 배당금이 꼬박꼬박 들어오자 투자자가 늘어났고, 조씨는 부산과 경남, 서울, 인천 등지에 비슷한 회사와 센터를 만들었다.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당을 주면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도록 하고, 모집한 사람 수에 따라 내부 직급도 올려줬다. 리브, 씨엔, 챌린, 아더스 등으로 회사 명칭을 바꾸고, 각 회사에 각기 다른 대표를 선임해 별개 기업처럼 움직여 단속망을 피했다. 실제로는 나중에 가입하는 사람의 돈으로 예전 회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던 영업이 한계에 달하면서 배당금 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2008년 10월 조씨를 비롯한 핵심 인물 9명을 수배했다. 그러나 조씨는 2008년 12월초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했다. 이에 경찰은 이듬해 3월 국제경찰에 조씨에 대한 검거 협조를...
ㅎㅎㅎ 2018.09.06 추천 0 조회 617
2000년 일본 최대 최악의 강간 살인사건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한국명 김성종)     사건 당시 언론보도 일본에서 실종, 소재및 생사여부를 둘러싸고 영국 및 일본 언론들의 주목을 받아온 젊은 영국 여성이 실종 7개월여만에 토막사체로 발견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 경찰당국은 가나가와현의 한 해안 동굴에서 발견된 토막 사체를 부검한 결과 사체의 신원이 지난해 7월 실종됐던 영국 출신의 호스티스인 루시 블랙맨(22)양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발표했다.   도쿄경시청은 전문가들이 블랙맨의 치과기록과 사체의 치아구조가 일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으며 신장과 금발머리 등으로 미뤄 사체의 신원이 블랙맨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DNA 분석결과는 약 열흘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망원인은 아직 조사중이지만 그녀가 실종 당일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블랙맨의 토막 사체가 발견된 곳은 연쇄강간 용의자인 오바라 조지(48)씨 소유의 콘도미니엄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이어서,블랙맨 실종과 관련해서도 수사당국의 의혹을 사온 오바라의 범행 여부가 주목되고있다. 사업가인 오바라씨는 블랙맨양의 실종사건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이 사건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위키백과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김성종(金聖鐘) 출생지 오사카 시 희생자 수 사망자 2명 강간 피해자 400여명 이상  범죄 특성 성폭행 후 살해 동기 백인에 대한 집착 등 범행 지역 가나가와 현 및 도쿄 도 범행 기간 1992년 ~ 2000년 체포 2000년 10월 처벌 무기 징역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한국명 김성종, 1952년 -)는 일본의 기업인으로, 2건의 살인과 다수의 강간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가 저지른 일련의 강간 사건은 일본 역사상 가장...
ㅎㅎㅎ 2018.09.06 추천 1 조회 1378
1. 루이즈 가라비토( Luis Alfredo Garavito Cubillos) [사진=it.wikipedia.org] 루이즈 가라비토, 또다른 이름 'La Bestia(짐승)'로 불린다. 1957년 1월 25일 콜롬비아에서 출생했다. 7명의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받으면서 자랐다. 법정에서 성적 학대도 받았다고 증언했다. 1999년, 어린 소년 147명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가라비토가 그린 지도를 토대로  '시체 매립지'를 찾은 결과 적어도 300명은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너무 많은 희생자 수 때문에 지역 언론은 그를 "세계 최악의 연쇄 살인마"라고 불렀다. 2. 페드로 로페즈(Pedro Alonso López)   [사진=mirror.enha.kr] 1948년 10월 8일 콜롬비아에서 매춘부의 열세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8세때 여동생을 성추행하다 집에서 쫓겨났다.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에서 소녀 300명 이상을 강간하고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1980년 프리랜서 기자 론 레이트너(Ron Laytner)가 로페즈와 인터뷰를 공개해 유명해졌다. 희생자 중 53명을 묻은 에콰도르 무덤으로 경찰을 데려갔을 때부터 "안데스의 괴물"이라고 불렸다. 53명의 희생자는 모두 9~12세의 어린 소녀였다. 1983년 에콰도르에서만 110명의 여자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페루와 콜롬비아에서 행방불명된 240명의 소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1998년 정신이상자로 분류되면서 감옥에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3. 헨리 리 루카스(Henry Lee Lucas) [사진=www.murderpedia.org]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살인자. 17개 주에 걸쳐 360명 이상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1936년 8월 23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텍사스에서 체포됐으며 그의 자백으로 미결사건 수백건이 '해결' 상태로 정리됐다. 11명을 죽이고 신원미상의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한 언론매체를 통해 위조자백을 한 사실이 발견됐고, 1998년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10살때...
ㅎㅎㅎ 2018.09.06 추천 0 조회 748
대한민국에서 1년간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대략 900건. 대부분 사건들은 증거와 주변의 진술로 수일 내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몇년이 지나도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미제사건들도 다수 존재한다. 2016년 살인사건 공소시효 제도가 폐지되면서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던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다. 발달된 과학수사도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과 주변의 의지가 진실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오랜 기간 풀리지 않고 미스터리로 남을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어떤 계기로 밝혀졌는지 사례 별로 모았다. 18년 간 범인 사진 품고 다닌 막내 형사 '노원 주부 성폭행 살인 사건' 사건 경위  : 1998년 대낮인 오후 1시에 집에 혼자 있던 주부 A(당시 34세)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A씨 남편의 체크카드로 151만원을 뽑은 뒤 자취를 감췄다. 당시 도봉경찰서가 발칵 뒤집혀 형사·강력팀 전체가 투입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단서는 현장에 남은 범인의 DNA와 혈액형, 현금입출금기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인의 흑백사진이 전부. 당시 막내로 투입된 김응희 경위도 선배 형사들 심부름하며 수사를 거들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5개월 뒤 인근 경찰서로 발령 나 사건에서 손을 뗐고, 수사본부도 2년여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해체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김응희(맨 왼쪽) 경위가 동료 경찰관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 부녀자 성폭행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18년 만에 검거한 김 경위는 “후배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고운호 기자 어떻게 잡았나 : 본부 해체 후 16년이...
전전긍긍 2018.09.01 추천 0 조회 1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