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사건

희대의 충격적 연쇄살인마 10인

Author
ㅎㅎㅎ
Date
2018-09-06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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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1. 루이즈 가라비토(

Luis Alfredo Garavito Cubillos)







[사진=it.wikipedia.org]





루이즈 가라비토, 또다른 이름 'La Bestia(짐승)'로 불린다. 1957년 1월 25일 콜롬비아에서 출생했다. 7명의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받으면서 자랐다. 법정에서 성적 학대도 받았다고 증언했다.


1999년, 어린 소년 147명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가라비토가 그린 지도를 토대로  '시체 매립지'를 찾은 결과 적어도 300명은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너무 많은 희생자 수 때문에 지역 언론은 그를 "세계 최악의 연쇄 살인마"라고 불렀다.



2. 페드로 로페즈(Pedro Alonso Lóp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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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irror.enha.kr]





1948년 10월 8일 콜롬비아에서 매춘부의 열세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8세때 여동생을 성추행하다 집에서 쫓겨났다.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에서 소녀 300명 이상을 강간하고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1980년 프리랜서 기자 론 레이트너(Ron Laytner)가 로페즈와 인터뷰를 공개해 유명해졌다.


희생자 중 53명을 묻은 에콰도르 무덤으로 경찰을 데려갔을 때부터 "안데스의 괴물"이라고 불렸다. 53명의 희생자는 모두 9~12세의 어린 소녀였다. 1983년 에콰도르에서만 110명의 여자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페루와 콜롬비아에서 행방불명된 240명의 소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1998년 정신이상자로 분류되면서 감옥에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3. 헨리 리 루카스(Henry Lee Lu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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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www.murderpedia.org]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살인자. 17개 주에 걸쳐 360명 이상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1936년 8월 23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텍사스에서 체포됐으며 그의 자백으로 미결사건 수백건이 '해결' 상태로 정리됐다. 11명을 죽이고 신원미상의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한 언론매체를 통해 위조자백을 한 사실이 발견됐고, 1998년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10살때 형제가 휘두른 나이프에 한쪽 눈을 잃었다. 매춘부 어머니는 그에게 '헨리에타'라는 이름을 붙이고 여자옷을 강요했다. 이로 인해 주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으며 이후 사회에 대한 증오심이 이에 기인한 것이라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극심한 허언증을 앓고 있었으며 자백을 여러 번 번복했다. 실제로 살해한 것은 자기 어머니뿐이라 증언하기도 했다.



4. 테드 번디(Theodore Robert "Ted" Bu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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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irror.enha.kr]





1970년대 악명높은 연쇄 살인범이다. 호감형 얼굴로 연쇄 살인, 납치, 강간, 시간 등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마로 유명하다.


수십년간 범행을 부인하다 사형 직전 7개주에 걸친 30개 살인을 자신이 저질렀노라고 자백했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 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외모를 피해자들의 신임을 얻는데 이용했다. 주로 공개된 장소에서 부상 당하거나 장애가 있는 척 하여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이후 외딴 곳으로 피해자를 유인해 살해했다. 종종 범죄현장에 다시 방문해 썩어가는 시체와 성행위를 맺기도 했다. 12명의 피해자를 참수해 그 머리를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워싱턴 대학에 다니는 동안 '스테파니 브룩스'라는 여자와 사귀다가 차였다. 이후 범행 대상이 된 여성의 상당수가 스테파니와 막연하게 닮아 실연의 상처가 그에게 범행 동기로 작용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1989년 1월 플로리다 레이포드 감옥 전기의자 위에서 죽었다.



5. 우범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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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n.wikipedia.com]





우범곤은 엄밀히 말해 연쇄 살인마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역대 최다 살인을 갱신한 대량살인범이다. 대한민국 경찰 신분으로 56명을 죽이고 3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2011년 노르웨이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단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살인마로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55년 2월 24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나 경찰관 아버지를 뒀다. 해병대 제대 후 경찰관이 되었으며 부산직할시 남부경찰서, 서울특별시 101경비단을 거쳐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 지서로 좌천되었다. 이 당시 술만 마시면 성격이 난폭해지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 했으며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한다.


1982년 4월 26일, '파리를 잡으려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쳤다'는 이유로 동거녀와 말다툼을 했다. 화를 식히지 못한 채 지서로 갔다가 술에 취한 채 돌아왔다. 만취 상태에서 동거녀를 폭행했고, 말리러 온 동네 사람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다시 집을 나갔다.



저녁 8시경 지서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M1 카빈 소총 2자루,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했다.




이후 26일 밤 9시 40분부터 27일 새벽 3시 35분까지 총 62명을 살해하고 3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지서를 나와 마침 앞을 지나던 26세 남성에게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토곡리 시장으로 달려가 총을 난사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했다.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우체국 교환원 2명과 집배원 1명을 살해 했으며, 상갓집에 난입하여 12명을 살해했다. 27일 새벽 5시 35분, 평촌리 민가에 침입해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그 자리에서 우범곤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62명이 주민들이 사망했고, 33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6명의 희생자는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죽었다.


범행당시 우범곤의 신분이 경찰이었다는 점과, 초기 경찰 대응이 미온했다는 점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 전두환 정부가 내각 사퇴 압력에 직면했다. 이 사건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에 오르게 된다.




5. 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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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rchestrak.tistory.com]





1970년 4월 18일에 태어났다. 주로 출장 마사지사 혹은 부유층 노인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으며, 2003년 9월과 2004년 7월 사이 20여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3명의 피해자를 태웠으며 최소 11명의 피해자 시신을 훼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된 이래, 총 14차례의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의 혐의로 11년을 교도소에서 생활했다. 1991년 안마사와 결혼하였으나, 2002년 5월 무렵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한 뒤부터 여성 혐오증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11월에는 전과자 이혼남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교제 중이던 여성으로부터 절교를 당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과 부자에 대한 막연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연쇄살인의 계기가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첫 살인은 2003년 9월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단독주택에서 행해진 대학교 명예교수 부부 살인사건이다. 이후 2004년 7월까지 총 21명을 잇달아 살해하였는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만 21명이다.


도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 등을 이용하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토막 내 야산에 묻기도 하였다. 또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도록 살해한 여성의 지문을 흉기로 도려 내기도 하는 등 갖가지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2005년 6월 9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6. 백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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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wikitree.co.kr]





1930년대 한국의 사이비 종교단체다. 80여차례에 걸쳐 남녀신도 350명을 살육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백백교 교주의 머리는 일제 경찰이 사후 '범죄형 두뇌표본'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백도교라고 불렸지만 창시자가 죽고 아들이 교주가 되면서 백백교로 불리게 됐다. 종말의 날에 서양은 불, 동양은 물의 심판을 받아 인류가 멸망한다는 종말론을 내세웠다.


신도들을 세뇌시켜 전재산을 바치게 만들고, 여신도들과 그 딸을 교주의 시녀로 바치게 해 성폭행했다. 여신도를 성폭행한 후 죽이기도 하고, 시녀가 되길 거부한 자들을 죽이기도 했다. 여신도가 자기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돼도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냥 다 죽였다.


조부와 부친이 백백교에 빠져 여동생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고 전재산을 빼앗긴 유곤룡이란 청년이 교주 면담을 요구하고 이를 폭로하면서 백백교의 악행은 끝이 났다.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지하실에 백백교 교주의 머리가 포르말린에 담겨서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머리는 2011년 10월 25일 경기 고양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됐다.




7. 김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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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today.tistory.com]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다. 살인 동기가 본래 살인이 아니라 강도였다는 점에서 대량살인범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2004년 유영철 사건 발생 전까지 3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뺏은 살인범으로 기록됐다.



1975년 8월 13일부터 10월 7일까지 55일 동안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마을 주민 안종현(63)을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무안군, 경기도 평택시, 서울 등지로 9차례를 걸쳐 모두 17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1975년은 우범곤 사건보다 7년전이고 10.26사태로부터도 4년전이다.



1975년 10월 7일 서울에서 피해자의 피가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 신고로 검거되었다. 김대두는 살인 후 피해자가 소지한 물건을 기념품처럼 취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습관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다. 살해 후 여느 때처럼 피해자의 물건을 가지러 가려고 했는데, 마땅히 가져갈만한 것이 없자 청바지를 벗겨 가져갔다. 어리석게도 피해자의 청바지가 피범벅이었음에도 세탁소에 맡겼다. 청바지에 묻은 피를 보고 의구심이 든 세탁소 직원 하근배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공범도 체포되었다.


모든 죄를 순순히 인정했으며, 검거 이틀 후 현장검증을 실시했는데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히죽 웃어대는 모습에 전국민이 경악했다.



법원은 이후 김대두에게 사형, 공범 김해운은 한 건만 가담한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이듬해인 1976년 12월 28일에 김대두의 사형이 집행됐다.




8. 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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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nester.tistory.com]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자이다.



정신이상이 의심되는 우범곤을 제외하고, 유영철, 김대두에 이어 한국에서 3번째로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다. 유영철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며 유영철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2004년 1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초등학생 2명을 납치, 성폭행 한 뒤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일대를 돌아다니며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거나 거주지에 침입하여 살인과 방화를 함께 저지르는 등 연쇄살인 행각을 벌였다.


2006년 4월 22일 새벽, 신길동의 어느 다세대 주택에 침입하여 자고있던 20대 청년을 둔기로 살해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극렬히 저항하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청년의 아버지까지 합세하여 격투 끝에 붙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이다. 정남규는 날카로운 흉기를 사용하여 범행을 저질렀으며 성폭행과 방화를 함께 저질렀는데 이러한 '찌르는' 행위, 성폭행, 방화 등의 행동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성적인 동기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 달라" 는 발언을 하는 등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7년 4월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담배를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 라는 말을 남겼으며 2009년 11월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9. 메리 플로라 벨(Mary Flora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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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nha.mirror.co.kr]





1957년 5월 26일생, 영국 출신의 최연소 연쇄살인다. 만 10살에 2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당시 3~4살 유아였던 브라이언 하우와 마틴 브라운을 죽였다.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면도칼로 피해자의 배 위에 'M'이라는 글자를 새기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하우의 성기를 훼손하기도 했다.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법정에서도 죄의식 없이 교활하고 태연한 모습을 보여 청중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성매매 여성이었던 생모 베티 벨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심하게 학대했다. 어머니의 손님에게 소아성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돈을 준다는 이유로 손님이 딸을 원할 때 돕기까지 했다.


1998년 자신의 살인 기록을 담은 책인 '들리지 않는 외침' 을 출간해서 많은 비난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0. 내니 도스(Nannie D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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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listverse.com]





미국의 연쇄살인마로, 5번의 결혼생활 동안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총 11명의 남편과 친지들을 죽였다.


16세에 첫 남편과 결혼한 뒤 4명의 아이를 낳았다. 첫 남편은 도스가 2명의 딸을 죽였다고 의심이 되자 그녀를 떠났다. 1929년, 로버트 해럴슨이라는 남자와 두번째 결혼을 했다. 16년 결혼 생활 동안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2명의 손자를 죽였다. 1945년 남편이 그녀를 강간하자, 독을 먹여 남편도 죽였다. 3번째 결혼 후 집에 화재를 일으켜 보험금을 타냈다. 1950년대 4번째 남편 리차드 모튼과 결혼했다. 그후 몇달 지나지 않아 새로운 남편과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 5번째이자 마지막 남편을 죽인 후에야 보험금을 타려던 동기가 발각돼 기소됐다. 1955년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오클라호마 주 형무소에서 1965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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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15년 2개월간 옥살이한 목사가 있다. 그나마 다행히 재심을 거쳐 죄가 없음을 인정받았다. 범죄자 꼬리표를 떼고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했지만,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1972년 춘천, 성폭행을 당한 10살 여아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희생자는 현직 파출소장 딸이었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공권력에 대항하는 범죄로 규정했다. 체포 기한을 정해 놓고, 범인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잡지 못하면 수사기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압박했다. 범인은 체포 명령 기한을 하루 앞두고 체포됐다.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원섭 목사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 이틀간 고문과 폭행이 이어졌다.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하지도 않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법정에서 자백은 거짓이었다고 뒤늦게 강변했지만, 그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1972년 정 목사는 강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87년 12월 성탄 특사로 가석방됐다. 정원섭 목사(82)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 소재로 사용됐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정 목사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정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도 올해 6월 출간됐다.  정 목사는 누명을 벗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2011년 대법원은 그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를 토대로 정 목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3년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정 목사에게 26억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형사보상 소멸시효가 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인데, 정 목사가 10일 늦게 신청했다는 이유다. 판결에 굴하지 않았다. 정 목사는 사건 당시 자신을 고문한 경찰들, 기소 검사, 1심 재판장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올해 1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임태혁 재판장)는, 고문에 관여하고 증거를 조작한 경찰관 3명과 그들 유족에게 23억 8,800만 원을 연대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검사와 재판장, 국가에 대한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단 돈 만 원만 줘도 진심으로 사죄하면 용서" <뉴스앤조이>는 심경을 묻기 위해 정원섭 목사에게 26일 연락을 취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란 기대와 달리 정 목사는 불만을 쏟아 냈다. 항소할 생각도 없고, 배상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가 뭘까. 정 목사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 본다. "이번 판결은 '빈껍데기'라고 생각한다. 내 요구는 (경찰의) 고문 사실을 알고, 사건 조작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소한 검사, 또 그 사실을 전부 알고 현장검증까지 하고, 무죄 사실을 알면서도, 무기징역을 선고한 판사에게 책임을 물어 달라는 거다. 현재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경찰관들 자손과 가족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왜 그런 사람들한테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는가. 내가 그런 걸 요구하면 미친 놈이지. 판결문을 보면 가족 누구누구한테 얼마씩 배상하라고 나와 있다. 개똥 같은 판결이다. 왜 내가 불쌍한 이웃에게 폐를 끼치겠는가? 절대 그건 안 된다. 이 재판은 '제로'다." 한마디로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는 이야기다. 정 목사의 의지는 확고한 듯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항소할 계획이 없고, 경찰관들 유족들에게 돈 한 푼 받을 생각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 목사는 거액의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고 했다. "오히려 빌딩을 몇 채씩 가지고 있는 정 아무개 검사는 왜 (배상에서) 빠지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팔십 넘은 내가 돈 달라고 이렇게 소송하는 건 아니다. 만일 그들이 돈 만 원만 준다 해도,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고맙게 받아들일 거다. 소송은 전부 없던 걸로 할 거다."
이런18 2018.12.28 Votes 0 Views 458
전북 군산시 옥고면 개야도 부근 바다에서 얼굴없는 시신으로 발견된 정호철씨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이 글에 대해서 분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그럴만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을 눈치 채셔야할텐데 그러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이 새벽에 한 번 글을 써 보겠습니다. (망자에 대해서 묵념...) 순서 없이. 잘 못 알고 있을 수 있는 부분을 짚어 보겠습니다. 1, (유가족이 주장하는) 노예생활을 그는 했는가? 답: 그는 주민등록을 위 주민등록표와 같이, 주소를 정상적으로 옮겨놓은 생활의 근거지였음으로, 노예로 끌려간 것이 아님. 노예를 부리면서 주민등록을 주인과 함께 주소지를 옮기는 경우도 있음? 2. 사건발생과 시신발견 시간의 차이는? 사건발생은  2012년 7월 24일......18시 50분경. 시신발견은     같은달   29일......12시 20분경. 그러므로, 약 5일간 바닷물 속에 시신이 잠겨 있었음. 그 5일동안 어떤 일이 바닷속에서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음. (바닷물에 빠져서 숨지면, 약 3일~7일 사이에 떠 오른다고 함) 이 날짜를 따져보아야하는 이유는... 시신이 바닷물 속에 잠긴 후, 어떤 일이 발생해서 시신이 훼손되었는지 확증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임. 머리부분 훼손이, 대형 물고기에 의한 것인지, 떠 오르다가 스크루에 의한 것인지, 사고 당시에 충격 때문인지 알 수가 없게 됨. 즉, 견인로프에 의한 잘림현상이라는 단 한가지 추론만으로 "불가"한 내용이라고 싸잡아 헐뜯을 수 없음. 오직 그 한가지 경우의 수만으로 몰고 가는 글의 추론이 그래서 나쁨. 3, 잘려나간 부분은 칼로 잘라낸 흔적인가? 아래는 경찰측 설명. 첫번째 의사는...
가벼운마음 2018.12.28 Votes 0 Views 578
찌라시 한국사의 심화편으로 찌라시 중국사를 준비해 봤어. 중국과 우리는 고대로부터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의 역사는 뗄래야 뗄 수가 없어. 중국사를 알게 되면 한국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재미가 배가 될 테니 일단 따라와 보라고.   중국의 역사 중 요순시대는 일반적으로 전설적 국가로 치부를 하고 있고, 그 뒤 하상주 시대가 이어져. 첫 시간으로 기원전 1000년경 상(은)나라를 비빔면도 아닌데 맛나게 말아먹은 미녀 이야기로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려 해.   요순시대와 하상주 시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 이전의 이야기야. 춘추는 중국 사상의 최고봉 공자님께서 쓰신 책이야. 책 이름으로 시대 구분을 할 정도이니, 중국에서 이 분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아도 다들 알겠지? 영화 <봉신연의>의 '달기(판빙빙)'   오늘의 주인공은 음란 미녀 달기야. 그녀가 상(은)나라의 주왕을 꼬드겨서 준비한 대형 이벤트가 많이 있는데,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오금이 저릴 정도야. 1990년대 초반에 투명 비닐 옷을 입고 나타나 한국 주류 사회를 놀라게 한 박진영은 그녀의 창의력에 비하면 유치원생 수준이지. 창의력도 뛰어나지만 미녀인 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어.   대표적인 것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주지육림! 연못에 술을 가득 채우고, 고기로 조경을 해서 숲을 이룬다는 말이야. 요즘도 지구라는 행성에는 굶어 죽는 아이들이 넘쳐나는 판이야. 저 시대에 고기로 인테리어를 하고 연못에 술을 가득 채우다니! 흔히 지나치게 사치스런 파티를 일컬어 주지육림이라고 해. 여기에 여러분이 더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니, 중국사 어렵다고 미리 겁먹지...
라면먹자 2018.10.03 Votes 0 Views 1075
  중국 배우 판빙빙(36)을 둘러싼 망명설, 감금설, 실종설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아나운서 장웨이제 실종 사건도 덩달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7일 대만 현지 매체들은 “판빙빙이 현재 감금된 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판빙빙은 참혹한 상태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중국 고위급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판빙빙은 6월 중국 국영방송 CCTV 앵커 출신 추이융위안의 폭로로 가택연금 된 상태로 탈세 혐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3개월 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lorealparis 이 사건은 90년대 중국 다롄 방송국의 유명 여성 아나운서 장웨이제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장웨이제는 임신 8개월 중이던 지난 1998년 돌연 사라졌으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조차 그녀의 종적을 알지 못해 사람들의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더했다. 행방에 대한 무성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렇게 사건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2년 ‘인체의 신비전’을 관람한 한 중국인이 “임산부 표본이 장웨이제와 닮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임산부 표본은 ‘인체의 신비전’의 여러 표본 중에서도 큰 논란이 됐던 표본이다. 논란의 쟁점은 이렇다. 임신 중 사망한 딸 혹은 아내를 어느 유족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데 동의했겠느냐는 것이다. 인체의 신비전을 표본을 만드는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는 “유족에게서 기증받았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표본이 실종된 장웨이제와 닮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언론사들은 해당 인체 표본의 이목구비 비율과 발사이즈 등을 측정해 장웨이제와 비교했고, 매우...
ㅎㄷㄷ 2018.09.11 Votes 0 Views 1042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55)씨가 도피 7년만에 중국 현지 공안에 검거돼 '조희팔 사건'이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 있다. '조희팔 사건'은 조(58)씨 일당이 전국에 10여개의 유사수신 업체를 차리고 고수익을 낸다며 5년간 4만~5만명의 투자자를 모아 3억5000억원~4조원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 사건. 경북 영천 출신으로 알려져있는 조씨는 형제, 친구들을 핵심 임원으로 삼아 2004년 대구시 동구에 골반교정기와 찜질기 등 장비를 찜질방과 PC방에 빌려주는 업체를 차렸다. 조씨는 회장 행세를 하면서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낸 수익을 배당한다고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는 한 계좌에 440만원을 투자하면 매일 3만5000원씩 이자를 지급해 8개월만에 580여만원을 챙길 수 있다고 선전했다. 원금과 배당금이 꼬박꼬박 들어오자 투자자가 늘어났고, 조씨는 부산과 경남, 서울, 인천 등지에 비슷한 회사와 센터를 만들었다.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당을 주면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도록 하고, 모집한 사람 수에 따라 내부 직급도 올려줬다. 리브, 씨엔, 챌린, 아더스 등으로 회사 명칭을 바꾸고, 각 회사에 각기 다른 대표를 선임해 별개 기업처럼 움직여 단속망을 피했다. 실제로는 나중에 가입하는 사람의 돈으로 예전 회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던 영업이 한계에 달하면서 배당금 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2008년 10월 조씨를 비롯한 핵심 인물 9명을 수배했다. 그러나 조씨는 2008년 12월초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했다. 이에 경찰은 이듬해 3월 국제경찰에 조씨에 대한 검거 협조를...
ㅎㅎㅎ 2018.09.06 Votes 0 Views 517
2000년 일본 최대 최악의 강간 살인사건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한국명 김성종)     사건 당시 언론보도 일본에서 실종, 소재및 생사여부를 둘러싸고 영국 및 일본 언론들의 주목을 받아온 젊은 영국 여성이 실종 7개월여만에 토막사체로 발견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 경찰당국은 가나가와현의 한 해안 동굴에서 발견된 토막 사체를 부검한 결과 사체의 신원이 지난해 7월 실종됐던 영국 출신의 호스티스인 루시 블랙맨(22)양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발표했다.   도쿄경시청은 전문가들이 블랙맨의 치과기록과 사체의 치아구조가 일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으며 신장과 금발머리 등으로 미뤄 사체의 신원이 블랙맨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DNA 분석결과는 약 열흘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망원인은 아직 조사중이지만 그녀가 실종 당일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블랙맨의 토막 사체가 발견된 곳은 연쇄강간 용의자인 오바라 조지(48)씨 소유의 콘도미니엄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이어서,블랙맨 실종과 관련해서도 수사당국의 의혹을 사온 오바라의 범행 여부가 주목되고있다. 사업가인 오바라씨는 블랙맨양의 실종사건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이 사건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위키백과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김성종(金聖鐘) 출생지 오사카 시 희생자 수 사망자 2명 강간 피해자 400여명 이상  범죄 특성 성폭행 후 살해 동기 백인에 대한 집착 등 범행 지역 가나가와 현 및 도쿄 도 범행 기간 1992년 ~ 2000년 체포 2000년 10월 처벌 무기 징역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한국명 김성종, 1952년 -)는 일본의 기업인으로, 2건의 살인과 다수의 강간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가 저지른 일련의 강간 사건은 일본 역사상 가장...
ㅎㅎㅎ 2018.09.06 Votes 1 Views 1196
1. 루이즈 가라비토( Luis Alfredo Garavito Cubillos) [사진=it.wikipedia.org] 루이즈 가라비토, 또다른 이름 'La Bestia(짐승)'로 불린다. 1957년 1월 25일 콜롬비아에서 출생했다. 7명의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받으면서 자랐다. 법정에서 성적 학대도 받았다고 증언했다. 1999년, 어린 소년 147명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가라비토가 그린 지도를 토대로  '시체 매립지'를 찾은 결과 적어도 300명은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너무 많은 희생자 수 때문에 지역 언론은 그를 "세계 최악의 연쇄 살인마"라고 불렀다. 2. 페드로 로페즈(Pedro Alonso López)   [사진=mirror.enha.kr] 1948년 10월 8일 콜롬비아에서 매춘부의 열세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8세때 여동생을 성추행하다 집에서 쫓겨났다.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에서 소녀 300명 이상을 강간하고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1980년 프리랜서 기자 론 레이트너(Ron Laytner)가 로페즈와 인터뷰를 공개해 유명해졌다. 희생자 중 53명을 묻은 에콰도르 무덤으로 경찰을 데려갔을 때부터 "안데스의 괴물"이라고 불렸다. 53명의 희생자는 모두 9~12세의 어린 소녀였다. 1983년 에콰도르에서만 110명의 여자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페루와 콜롬비아에서 행방불명된 240명의 소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1998년 정신이상자로 분류되면서 감옥에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3. 헨리 리 루카스(Henry Lee Lucas) [사진=www.murderpedia.org]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살인자. 17개 주에 걸쳐 360명 이상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1936년 8월 23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텍사스에서 체포됐으며 그의 자백으로 미결사건 수백건이 '해결' 상태로 정리됐다. 11명을 죽이고 신원미상의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한 언론매체를 통해 위조자백을 한 사실이 발견됐고, 1998년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10살때...
ㅎㅎㅎ 2018.09.06 Votes 0 Views 631
대한민국에서 1년간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대략 900건. 대부분 사건들은 증거와 주변의 진술로 수일 내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몇년이 지나도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미제사건들도 다수 존재한다. 2016년 살인사건 공소시효 제도가 폐지되면서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던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다. 발달된 과학수사도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과 주변의 의지가 진실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오랜 기간 풀리지 않고 미스터리로 남을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어떤 계기로 밝혀졌는지 사례 별로 모았다. 18년 간 범인 사진 품고 다닌 막내 형사 '노원 주부 성폭행 살인 사건' 사건 경위  : 1998년 대낮인 오후 1시에 집에 혼자 있던 주부 A(당시 34세)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A씨 남편의 체크카드로 151만원을 뽑은 뒤 자취를 감췄다. 당시 도봉경찰서가 발칵 뒤집혀 형사·강력팀 전체가 투입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단서는 현장에 남은 범인의 DNA와 혈액형, 현금입출금기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인의 흑백사진이 전부. 당시 막내로 투입된 김응희 경위도 선배 형사들 심부름하며 수사를 거들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5개월 뒤 인근 경찰서로 발령 나 사건에서 손을 뗐고, 수사본부도 2년여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해체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김응희(맨 왼쪽) 경위가 동료 경찰관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 부녀자 성폭행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18년 만에 검거한 김 경위는 “후배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고운호 기자 어떻게 잡았나 : 본부 해체 후 16년이...
전전긍긍 2018.09.01 Votes 0 Views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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