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사건

일본 희대의 강간살인마 오바라 조지(2000)

작성자
ㅎㅎㅎ
작성일
2018-09-06 07:53
조회
1702
2000년 일본 최대 최악의 강간 살인사건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한국명 김성종)

 

 



사건 당시 언론보도

일본에서 실종, 소재및 생사여부를 둘러싸고 영국 및 일본 언론들의 주목을 받아온 젊은 영국 여성이 실종 7개월여만에 토막사체로 발견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 경찰당국은 가나가와현의 한 해안 동굴에서 발견된 토막 사체를 부검한 결과 사체의 신원이 지난해 7월 실종됐던 영국 출신의 호스티스인 루시 블랙맨(22)양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발표했다.

 

도쿄경시청은 전문가들이 블랙맨의 치과기록과 사체의 치아구조가 일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으며 신장과 금발머리 등으로 미뤄 사체의 신원이 블랙맨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DNA 분석결과는 약 열흘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망원인은 아직 조사중이지만 그녀가 실종 당일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블랙맨의 토막 사체가 발견된 곳은 연쇄강간 용의자인 오바라 조지(48)씨 소유의 콘도미니엄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이어서,블랙맨 실종과 관련해서도 수사당국의 의혹을 사온 오바라의 범행 여부가 주목되고있다. 사업가인 오바라씨는 블랙맨양의 실종사건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이 사건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위키백과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김성종(金聖鐘)

출생지 오사카 시

희생자 수 사망자 2명 강간 피해자 400여명 이상 

범죄 특성 성폭행 후 살해

동기 백인에 대한 집착 등

범행 지역 가나가와 현 및 도쿄 도

범행 기간 1992년 ~ 2000년 체포 2000년 10월

처벌 무기 징역

 

오바라 조지(織原 城二, 한국명 김성종, 1952년 -)는 일본의 기업인으로, 2건의 살인과 다수의 강간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가 저지른 일련의 강간 사건은 일본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인물

오바라는 1952년 오사카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열심히 일하여 대형 파치스로(ja) 점의 점주가 되어 부를 축적했고, 오바라는 이를 배경으로 명문 학교인 게이오 대학의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재학중 아버지가 사망하여 오바라는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았고, 이어 게이오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여 귀화하였고, 이름을 오바라 조지로 고쳤다. 체포된 후 경찰의 수색을 통해 오바라가 모은, 4800여개에 달하는 포르노 영화가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되었다. 또한, 수사결과 400여명의 여성(그 중 150여명이 백인)을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연표

1992년 : 가나가와 현 즈시 시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인인 카리타 리지웨이(Carita Ridgeway)에게 마약을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1992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오바라는 부유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다수의 여성을 유인, 성폭행했다.

 

2000년

7월 1일 : 도쿄 도 미나토 구 롯폰기의 클럽에서 일하던 영국인인 루시 블랙맨(Lucie Blackman, 당시 21세)이 실종되었다.7월 4일 : 루시의 언니인 소피가 루시를 찾아 도쿄에 옴. 이틀 뒤인 6일에는 아버지인 팀도 도쿄에 도착했다. 7월 13일 : 일본을 방문중이던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당시 일본 총리인 모리 요시로에게 이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여, 사건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0월 : 오바라가 리지웨이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다.

 

2001년

1월 10일 : 가나가와 현 미우라 시의 바닷가 근처의 창고에서 블랙맨의 토막 사체가 발견되었다. 2003년 : 오바라가 도쿄 지방법원에 강간 및 살인 혐의로 기소됨. 2007년 4월 24일 : 1심이 오바라에 대해 리지웨이 살인 및 6건의 강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단 블랙맨 사건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했다.

 

2008년

12월 16일 : 2심인 도쿄 고등법원이 블랙맨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냈다.




유해 발굴 현장

 

일본 역사상 최대 최악의 강간 살인사건

 

오바라 조지 (한국명 김성종)는 1952년 오사카에서 가난한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대학 졸업까지는 국적이 한국이였으며 김성종의 아버지는 택시 기사나 신문 잡지 수집가 등으로 어렵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파칭꼬 사업으로 부자가 됐다.

 

김성종 또한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명문고를 졸업하고 게이오기주쿠 명문대를 졸업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고등학교 재학중 아버지가 사망하여 김성종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았고, 대학을 졸업 후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여 귀화하였고, 이름을 오바라 조지로 고쳤다.(이후 오바라라 칭함)

 

그 후 오바라는 1980-1990년 사이에 부동산 투자로 돈을 쏟아부었으나 일본 버블 경제의 몰락 하여 조직에 몸을 담구게 되면서 야쿠자들을 위해 돈세탁을 대신 맡아서 하게 된다. 오바라는 백인 여자에 대한 집착층이 강했다.

 

일본에는 그 당시만 해도 백인녀를 보는게 드물었다. 또한 오바라는 여성에게 성적으로 모욕감을 주고 지배하는 성적 페티쉬가 있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여성에게 온갖 성적인 모욕, 욕을 퍼부면서 섹스를 하는 판타지를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1992년 2월 29일, 조지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모델인 카리타 리즈웨이라는 백인녀를 마약 탄 술을 먹인 뒤 아파트로 끌고가 강간을 했다. 카리타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 때문에 아쉽게도 사망한다.



일본에서 찍은 카리타의 사진

 

그 후로 일본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 록본기에서 다른 일본, 백인 여자들 6명을 강간하고 2000년에 들어서는 록본기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던 당시 21세인 영국인 루시 블랙맨을 강간하고 살인한 후 시체를 8조각으로 토막내 미우라 시에 있는 한 동굴에 파묻었다.

 

이 사건으로 오바라의 지속된 연쇄 강간살인 사건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된다.

실종된 루시 블랜맨의 가족들이 도쿄로 날라와 실종된 루시를 찾기 위해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일본 언론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영국 언론에도 루시 블랙맨 실종 기사가 실리게 되었고 드디어 영국 총리 토니 블래어가 일본 총리 모리 요시로를 만나면서 루시 블랙맨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게된다.



루시 블랙맨의 사진

 

블랙맨 살해 방법




데이트 하자며 유인

아파트로 유인하여 약으로 기절 시킴

강간 후 전기톱으로 토막 살해








아파트 근처 동굴에 유기



 

 

오바라는 살인 혐의로 입건이 되고 당시 루시 블랙맨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실종으로 영국, 일본 언론에도 들끓게 되고. 그 후 오바라 재판에서는 록본기에서 오바라가 탄 마약에 정신을 잃고 강간을 당한 다른 피해자 외국인 (백인) 여성 3명이 나와서 오바라에게 강간을 당한 후 일본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외국인이고 백인이라는 이유로 처참히 무시를 당했다고 증언을 했다.

 

드디어 2001년 2월 9일 토막낸 루시의 시체가 콘크리트에 파묻힌 채로 발견이 되고 2007년 오바라는 리지웨이 살인 및 6건의 강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지만 블랙맨의 살인, 강간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유는 검사가 루시맨의 간에서 루시맨의 마약에 의해 사망했다는 법의학적인 증거를 찾지를 못했기 때문이였다. 이로 인해서 일본 경찰과 일본의 사법부는 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면치 못했고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도 나중엔 루시맨 사건에 대한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결정이 잘못되었고 후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 2심인 도쿄 고등법원이 블랙맨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될 것은 피해자는 블랙 루시맨, 카리타 리즈웨이, 그리고 다른 여성 6명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중에 경찰에 의해 발견된 오바라가 모은 포르노 수집물은 4800 여개에 달했고 그 중 오바라가 의식불명인 여성을 직접 강간하는 비디오테이프만 해도 400개 이상이 발견됐다.

 

오바라에 의해 강간당한 150명은 백인 여성인것으로 들어났고 250명은 일본 여성으로 즉 400명이 넘는 피해자가 추가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오바라 조지에게 강간당한 150명의 백인 여성과 250명의 일본 여성 총 400명과 2명이 살해당한 이 사건은 일본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사건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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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이지경까지 될수있었던 이면에는 일본의 강간범죄를 대하는 태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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